“저는 너무 ‘된장’이었어요. 저 정말 영어 못 했거든요. 그런데 미친 사람처럼 하려는 의지를 보이니까 되더라고요.”
2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 구글코리아 본사에서 정기현(33·사진) 미국 구글 본사 프로덕트매니저(PM)를 만났다.
구글 본사에 입사한 한국인 가운데 정 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마친 유일한 ‘토종’ 한국인이다. 그는 지난해 미국 구글 본사에 입사한 뒤 한국의 구글서비스 론칭과 사업전략을 총괄하고 있다.
서울과학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나온 뒤 1999년부터 액센츄어와 보스턴컨설팅그룹 한국 지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다가 2004년 미국으로 갔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기 위해서다.
“어학연수 경험도 없었고 미국에 가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나이는 서른 넘었죠, 영어 안 되죠, 처음엔 수업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정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의 여름 인턴십 기간이 다가오자 미국에서 ‘입사 선호 1위 기업’으로 평가받는 구글에 도전장을 내밀기로 했다.
“원래 MBA 출신은 인턴 면접 대상이 아니에요. 그래도 MBA 동문 연락처를 다 뒤져 구글에서 일하는 선배들을 찾아 조언을 구했죠.”
정 씨는 40장이 넘는 A4 용지에 면접에 나올 만한 질문과 대답 수백 개를 영어로 적고 달달 외웠다. 교포가 아님을 알리기 위해 ‘기현’이라는 한국 이름도 고수했다.
한 달이 넘게 요청한 끝에 마침내 그에게 면접 기회가 왔다.
엔지니어링, 인수합병(M&A), 사업개발,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마케팅, 세일즈 등 여러 파트의 담당자들과 10여 차례가 넘는 면접을 봤다.
당시 한국 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던 아시아태평양 지역 담당자에게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정보기술(IT)업체들의 컨설팅을 맡았던 점을 강조했다.
결국 정 씨는 12주간의 인턴십 기회를 얻었고 이후 정식으로 입사 제안을 받아 지금의 PM 자리에 올랐다.
그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구글코리아를 키워나가고 있다. 에릭 슈미츠 구글 회장에게 직접 보고를 하고 전략을 상의한다.
최근에는 미국 본사를 설득해 구글 해외 사이트 가운데 최초로 구글코리아만의 메인 화면 디자인을 새로 만들기도 했다. 다른 해외 사이트 메인 화면은 디자인이 동일하다.
정 씨는 “‘빠르고 안정적인 검색’이라는 구글의 제1원칙은 유지하되, 한국시장과 이용자들의 특징을 고려한 구글코리아만의 서비스를 선보일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