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011 독주 막아라” 2004년 도입 번호이동·신규가입 때 ‘010’ 의무화 번호 이점 사라져 ‘브랜드 경쟁’ 시대로

휴대전화 번호가 신분의 상징처럼 통하던 때가 있었다. 011, 016, 019 등 이동통신사별로 고유한 번호 가운데 단연 ‘011’이 최고의 번호였다. 011은 ‘1번’ ‘최초’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통화품질이 제일 좋았기 때문에 휴대폰 사용자에게 가장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 번호를 독점 사용하던 SK텔레콤은 광고 문구에서 ‘스피드 011’ ‘전화번호가 당신의 신분을 말해준다’는 식으로 번호 마케팅을 펼쳐 톡톡히 재미를 봤다. 하지만 011 번호는 서서히 줄어드는 반면, ‘010’이라는 새로운 번호가 지존(至尊)의 자리에 올랐다. 010 번호는 전체 휴대폰 사용자 가운데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4000만명이 넘는 우리나라 휴대폰 이용자 2명 중 한 명이 010으로 시작하는 휴대폰 번호를 쓴다는 말이다. 정통부가 010 번호를 도입한 지 3년 8개월만이다.

휴대폰 번호 011에서 010으로 바뀐다

직장인 이동배(30)씨는 지난달 영상통화와 무선 초고속인터넷 서비스가 가능한 3세대(3G) 휴대폰을 새로 장만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011번호를 계속 쓰고 싶었으나, 이동통신 대리점에서는 무조건 010으로 번호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정부의 정책이라는 설명이었다.

정통부는 2004년 이후 휴대폰 서비스에 새로 가입하는 사람은 무조건 010 번호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영상통화를 지원하는 3세대(G) 이동통신을 이용하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011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이동통신 사업을 한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의 전신) 시절부터 독점적으로 사용해왔다. 이후 KTF, LG텔레콤 등 후발사업자가 이동통신 사업에 뛰어들면서 016, 019 같은 번호가 추가로 생겼다. 017 번호를 사용하던 신세기통신은 SK텔레콤에, 018번호를 쓰던 한솔텔레콤은 KTF에 각각 인수됐다.

후발 사업자들은 시장점유율이 50%를 넘는 SK텔레콤에 대항하기 위해 “이미지가 좋은 011 번호를 한 회사가 독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011 번호를 다같이 사용하든지, 아니면 아예 011을 없애고 새로운 번호를 만들자고 규제기관인 정통부에 줄기차게 요구했다. 정통부는 이동통신 시장에 경쟁체제를 갖추기 위해 후발 사업자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011을 KTF와 LG텔레콤도 쓸 수 있게 한 번호이동제와 신규 번호인 010 번호가 탄생했다.

010 사용자가 4년도 안 돼 전체의 절반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이리저리 서비스 회사를 옮겨다니는 ‘철새’ 가입자가 많기 때문이다. 이동통신 업계에서는 연간 30% 안팎의 고객이 서비스를 해지하고 다른 회사로 옮겨간다. 업체들은 신규 고객을 붙잡기 위해 새 휴대폰을 거의 공짜나 다름 없는 가격에 제공하는 등 파격적인 혜택을 준다. 서비스 회사를 옮기는 고객은 기존 번호를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번호를 바꾸려면 무조건 010만 가능하다. 정통부의 번호정책에 따라 011이나 016으로 번호를 바꿀 수는 없게 돼 있다.

KTF와 LG텔레콤은 ‘011은 SK텔레콤’이라는 고정관념을 없애기 위해 010 번호를 대대적으로 확산시켰다. 예를 들어 011에서 010 번호로 바꿔 신규 가입하면 30만원 하는 최신 휴대폰을 5만원에 주는 식이다.

다른 회사에서 SK텔레콤으로 옮기는 고객도 010으로 번호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016이나 019 번호는 011이나 010보다 선호도가 낮기 때문이다. 휴대폰 번호를 010으로 바꿀 경우 옛 번호로 전화를 건 사람을 자동 연결해주는 ‘번호 안내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되기 때문에 별 불편이 없다.

7월 말 기준으로 010 사용자는 2108만1224명. 전체 가입자 4237만8923명의 49.7%로, 이달 중 50%를 돌파할 전망이다. 이른바 ‘번호 프리미엄’을 누렸던 011 사용자는 1월 말 1208만4428명에서 7월 말 1152만4577명으로 5.1% 줄었다. 전체 가입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7.2%까지 낮아졌다.

016, 017, 018, 019 등 이용자도 계속 감소하는 추세여서 시간이 흐르면 휴대폰 번호는 자연스럽게 010으로 통합될 전망이다. 영상통화와 무선 초고속인터넷 서비스가 가능한 첨단 3세대 서비스는 010 번호만 이용하도록 돼 있다.

번호 경쟁에서 브랜드 마케팅으로

대학생 이자경(23)씨는 작년 3월 휴대전화 번호를 010으로 바꿨다. 중학생 때부터 8년 동안 쓰던 018 번호와 이별한 것이다. 이씨는 “친구들이 대부분 010을 쓰고 있어 나도 바꿨다”고 했다. 010 사용자끼리는 010을 누를 필요 없이, 뒤의 8자리 번호만 누르면 통화가 가능하다. 반면, 011이나 018 등 다른 번호 사용자가 010 사용자에게 전화를 걸려면 11자리 숫자를 눌러야 한다.

SK텔레콤도 011을 고수하던 번호 전략을 바꿨다. 영상전화 등 첨단 서비스를 하려면 010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전에는 011 번호를 이용해 브랜드를 강화시켜 왔으나, 이제는 번호 대신 ‘T’라는 새로운 통합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KTF는 지난 3월 영상전화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010 번호나 회사 이름 대신 ‘SHOW(쇼)’라는 브랜드를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쇼를 해라’는 광고 문구는 어린 아이들도 따라 할 정도로 크게 히트했다.

Posted by Ozah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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